유다빈밴드 '지나갈 지나간 지나쳐갈' 심층 가사 분석
- 시간의 파도 위에서 엮어내는 상실과 희망의 이중주: 성숙한 애도의 방식
[CODA] 앨범의 후반부에 위치한 '지나갈 지나간 지나쳐갈'은 '축배'의 뜨거운 공동체적 환희 이후 찾아오는 고요하고 철학적인 성찰의 시간입니다. 이 곡은 불가항력적인 시간의 흐름과 그로 인한 필연적인 상실을 다루면서, 인간이 어떻게 기억과 기대를 통해 그 허무를 극복하고 삶의 연속성을 회복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에 대한 명상록'이자 '성숙한 애도(Mourning)의 노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Mv3popIpI&list=OLAK5uy_l_DJT9PYLmNkyhx1KTIOk7Cl0KZIMon9Q&index=9
1. 상실의 풍경화: 지워짐과 남겨짐 사이
춤을 추던 자리에 남겨진 발자국은 /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멀리
떠나간 빈자리엔 남겨진 조각들만이 / 기억이란 이름으로
노래는 텅 빈 해변의 이미지를 통해 상실을 시각화합니다. "춤을 추던 자리"는 생명력과 환희가 넘쳤던 과거의 순간이지만, 그 물리적 증거인 "발자국"은 "파도(시간)"에 의해 속절없이 지워집니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관계가 시간 앞에서 덧없이 사라진다는 근원적 허무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화자는 허무에 잠식되지 않습니다. 물리적 실체는 사라졌지만, "남겨진 조각들(감정의 잔해, 파편화된 추억)"을 "기억이란 이름으로" 명명하며 내면화합니다. 이것이 이 곡의 핵심적인 주제 의식입니다. 사물은 사라지지만, 의미는 남습니다. 상실된 대상을 내면의 '기억'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 애도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흩어지는 시간이 아쉬워 걸던 말은 /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여기
저마다의 여름에 불어오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여기" 남은 말들은 미련처럼 보이지만, 곧 "저마다의 여름에 불어오네"라며 계절의 순환 속으로 통합됩니다. 개인의 아쉬움이 자연의 섭리(계절)와 만나 보편적인 정서로 확장되는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2. 시간의 삼위일체: 과거, 현재, 미래의 통합
푸른 바람아 치는 물결아 / 우린 그날을 기억해
부는 여름과 찬란한 태양 / 지나갈 지나간 지나쳐갈
코러스에서 화자는 더 이상 파도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물(바람, 물결)을 청자로 호명하며 대화를 시도합니다. 이는 인간의 시간을 넘어선 자연의 영원성에 기대어 위로를 얻으려는 시도입니다. "우린 그날을 기억해"라는 선언은 망각에 대한 저항이자, 과거의 가치를 현재에 되살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제목의 세 가지 시제, "지나갈 지나간 지나쳐갈"이 등장합니다. 이 언어유희 같은 배치는 시간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 지나간 (과거): 이미 완료된, 찬란했던 여름과 태양의 시간.
- 지나갈 (현재): 지금 이 순간, 상실을 노래하는 이 시간조차 흐르고 있음.
- 지나쳐갈 (미래):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순간 역시 결국 과거가 될 운명임.
이 세 가지 시제를 나열함으로써, 화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흐르는 하나의 강물임을 받아들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깨달음입니다.
3. 애도의 고통과 능동적 전환: '기대'와 '믿음'
터질 것 같던 마음을 / 커져가는 순간을 / 두고 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
언젠가 이 순간을 / 다시 마주할 그날을 / 기대라는 이름으로
화자는 "두고 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라며 이별(과거와의 분리)의 고통을 솔직하게 토로합니다. 애도는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억지로 잊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기대'라는 새로운 도구를 꺼내 듭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에너지를 미래의 재회를 기다리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떠나지 못한대도 / 속절없는 시간은 / 머문지도 모르게 떠나니까
언젠가 이 순간을 / 다시 마주할 그날을 / 기대라는 믿음으로
"속절없는 시간"의 냉혹함을 인식한 화자는, 수동적인 '기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기대라는 '믿음'으로" 도약합니다. '믿음'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다시 마주할 것이라는 이 믿음이야말로 상실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과거를 향한 '기억'과 미래를 향한 '믿음'이 현재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됩니다.
4. 반복과 순환, 그리고 여운
스쳐 지나갈 이미 지나간 / 그 파도를 나는 기억해
또 지나쳐갈 또 지나쳐갈 / 또 지나쳐갈
브릿지에서 "또 지나쳐갈"이 반복되는 것은, 앞으로도 수많은 만남과 이별, 상실이 반복될 것임을 예견하고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제 화자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 파도를 나는 기억해"라고 말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삶은 상실의 반복이지만, 동시에 기억의 축적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만날 기대에 설레어 건넨 말은 /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노래의 마지막은 1절의 가사를 변주하며 끝납니다. "아쉬워 걸던 말"이 "다시 만날 기대에 설레어 건넨 말"로 바뀌었습니다. 상황(말이 전해지지 못함)은 같지만, 화자의 마음가짐은 '아쉬움(과거 지향)'에서 '설렘(미래 지향)'으로 완전히 변화했습니다. 말이 전해지지 못한 여운은 슬픔이 아닌, 언젠가 전해질 날을 기다리는 희망의 여백으로 남습니다.
결론: 흐르는 시간 속에 영원을 새기는 법
'지나갈 지나간 지나쳐갈'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고 삶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되 기억하고, 아파하되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유다빈밴드는 이 곡을 통해 "사랑했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사랑했다는 사실과 다시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은 시간보다 강하다"는 위로를 건네며, 앨범의 대미를 장식할 준비를 마칩니다.
'Music > Song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이곳에서": 유다빈밴드 [CODA] 단절가 #Epilogue (0) | 2025.11.21 |
|---|---|
| "막이 내려도 이 삶 속에서 이렇게 영원히": 유다빈밴드 [CODA] 커튼콜 (1) | 2025.11.21 |
| "이 섬을 사랑하게 될 거야": 유다빈밴드 [CODA] 축배 (1) | 2025.11.21 |
| "나는 같은 길을 걷지 않을 뿐이야": 유다빈밴드 [CODA] 20s (0) | 2025.11.21 |
| "너를 안으러 갈래" : 유다빈밴드 [CODA] 모래성 #Intermission (1) | 2025.11.21 |